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학 농민 혁명 (문단 편집) === 명칭 관련 논쟁 === 일본에서는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戦争), 중국에서는 '''동학당기의'''(东学党起义)[* 중국에서는 농민이나 백성의 봉기를 '기의(起義: 의로써 일어남)'라고 칭하는데, 일례로 [[황건적의 난]]을 '황건기의'라고 칭하거나, 왕조 교체기나 혼란기의 농민 봉기 세력을 '기의군(起義軍)'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도 '''갑오농민전쟁'''[* 교과서 등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명칭이다.]으로 부른다.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비롯되어 동학란[* 당시 동학군의 멸칭으로 [[동비]](東匪; 동학+비적)라는 단어도 있었다.], 동학 폭동[* [[북한]]에서도 '''갑오농민폭동'''이라고 부른다. 다만 북한에서 [[폭동]]이란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편이므로 유의. 일례로 [[임오군란]]도 '''임오군인폭동'''으로 부르며 '애국적 군인들과 도시 빈민들이 일본 침략자들과 봉건 통치배들을 반대하며 일으킨 대중적 폭동이라 평가한다.](동학란이 사회가 한 쪽으로 이념이 치우지기 이전까지 잘 쓰이긴 했지만, 이때도 동학의 난 또는 동학난이라고 불렀지 동학 폭동은 잘 안 쓰였다.), 동학농민봉기, 동학혁명, 갑오농민전쟁 등 다양한 칭호로 불리기도 하나, 현재는 동학농민운동이라 불린다. [[http://m.blog.daum.net/donghak120/57|동학농민운동의 명칭 변화]]. 동학 농민 봉기 혹은 동학란의 경우에는 사건의 중요성을 이전에 소규모로 빈발하던 농민봉기 수준으로 격하시킨다는 비판을 받으며,[* 그러나 '봉기' 혹은 '난'이라는 표현이 사건의 중요성을 축소한다고 볼 순 없다. [[태평천국의 난]] 등의 표현은 사건의 중요성을 축소하지 않는다.] 동학혁명은 진보나 [[사회주의]] 세력 등 주로 극좌 쪽에서 농민이 주도적으로 국가 정치의 대변혁을 시도했음을 높이 사는 이름이지만, 이들의 활동이 혁명이라기에는 이념의 구심점이 약했다는 비판이나 혁명을 너무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평가라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서구와 별개로 발전되어온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서구 역사에 끼워맞춰서 이해하려 하는 서구중심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유하자면, 비빔국수는 비빔국수로 이해하여야지, 스파게티의 맹아이니 뭐니 하는게 도대체 어딜봐서 비빔국수를 존중하는 해석이란 말인가?[* 특히 마르크스주의 및 이에 영향 받은 사관에서 '스파게티맹아론'의 오류를 많이 저지르는데, 이들은 역사적 발전에 따라서 한식에서는 '당연히' 스파게티가 나와야 한다고 전제하고는 "비빔국수는 스파게티로 발전했으니(혹은 발전할 맹아가 있었으니) 자체적 발전 동력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설명하려는 집착을 보인다. 그런데 이런 해석에서 주인공은 스파게티이지 비빔국수가 아닌데, 도대체 어딜봐서 비빔국수를 올바르게 평가했다는 것인가?] 반대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위원회 의장이 척왜(척양은 배제)와 근대화 측면에서 [[5.16 쿠데타]]를 혁명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을 세운 적도 있어서 조금은 복잡한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갑오농민전쟁의 경우에는 16세기 [[독일]]의 농민전쟁에 영향을 받은 칭호이나, 둘간의 차이가 상당하고 동학군은 조선 왕조 자체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라고 보기 힘들다. 논문에서는 동학농민'''항쟁'''이란 용어도 많이 쓴다. 이 경우는 운동이나 봉기 같은 축소 단어가 아니며 격렬한 전투를 나타내면서도 전쟁이 아닌 것은 잘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대사학계 주류에서는 이미 90년대부터 '''1894년 농민전쟁''', '''갑오농민전쟁'''으로 명칭이 굳어진 상황이다.[[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003171|#]] 그 이유는 첫째, 동학의 역할이 이념적 구심점이었다기 보다는 일종의 커뮤니티 성격을 많이 띄고 있었으며 둘째, 근왕주의적인 성격이 있었다고는 하나, 군대를 조직하여 당시 고종 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던 데다 셋째, 당시 농민군이 지향했던 지점이 조선왕조와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 한국 현대사학계의 주류가 진보 내지 좌파라서 북한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부류도 있지만, 이미 1989년에 이이화 마저도 1894년 동학농민 전쟁이라는 명칭을 쓴 사례가 존재한다.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771574|#]] ] 다만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동학농민운동도 [[새마을운동|새마을'운동']]과는 전혀 다르지 않냐는 지적도 꽤 된다. 비슷한 경우로 [[3.1 운동]]도 '운동'이라는 이름에 많은 비판이 있음에도 지금까지 쓰이는 실정. 사실 성격이 무력 전쟁의 성격이 강한 점에서는 동학은 3·1 운동과도 다르다. 영어로는 비슷한 사건에 규모와 큰 상관 없이 Rebellion(반란, 모반)나 Uprising(봉기)를 많이 붙이는 편이다. 예컨데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의 표제어를 보면 [[의화단의 난]]은 [[https://www.britannica.com/event/Boxer-Rebellion|Boxer Rebellion]], [[태평천국]]은 [[https://www.britannica.com/event/Taiping-Rebellion|Taiping Rebellion]], [[부활절 봉기]]는 [[https://www.britannica.com/event/Easter-Rising|Easter Rising]]으로 되어있으며, 본 문서가 설명하는 사건은 [[https://www.britannica.com/event/Tonghak-Uprising|Tonghak Uprising]]으로 되어있다. 또한 [[홍경래의 난]]도 그 혁명적 성격을 모르는 것이 아니듯이, 그냥 동학농민란, 혹은 동학민란이라고 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해석도 있다. 비슷한 경우로 [[황건적의 난]]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황건기의'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의 명칭을 존중해 동학농민혁명이란 표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대표적이다(2009년 말일 활동 종료). 다만 [[대한민국 교육부|교육부]]의 검인정을 받아 출판되는 한국사 교과서와 각종 [[EBS]] 교재에는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에서도 두 명칭을 혼용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이 [[2010년대]] 중반 현재도 진행 중인데, 확정되어 국가 행사가 된다면 명칭이 확립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을 '반봉건 반침략'으로 규정하고, 이청원의 논리를 진전시켜 1945년 초등학생용 문고판으로 <갑오농민전쟁>을 펴냈다. 이후에도 농민전쟁이라는 기본 시각이 확립되었고, 그에 따라 갑오농민전쟁이라고 불렀다. 1981년에 출판된 <조선전사> 등에서 동학농민혁명을 갑오농민전쟁, 1894년 농민전쟁으로 정착되기에 이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